그가 사준 옷들을 찢고 나를 위해 꾸민 가구들을 부수고 화장대를 엎은 뒤에 깨진 유리 조각들에도 연연하지 않으며 이불들을 잡아 뜯었다.
날 위한 책들을 쏟아 엎고도 분이 풀리지 않아 이미 피 투성이인 손으로 전등을 벽에 깨부셨다.
창문이 없는 방 안은 불을 끄면 암흑 뿐이었다.
충분히 부셨다고 생각했음에도 암흑 안에 서 있으려니 이가 갈렸다.
방 안에 후루야가 있는 것이 틀림 없었음에도 내 거친 숨소리만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.
분에 못 이긴 내가 비명을 지르고 있을 때 그는 아무렇지 않게 촛불에 불을 붙였다.
그의 냉담한 표정이 따스한 촛불 아래서 기이하게 일렁거렸다.
"분은 다 풀렸어?"
((넌 이걸로 만족해?))
그는 내게 다가왔다.
그에게 깨진 유리 조각을 던져 보아도 그는 멈추지 않고 우리조각을 맞아가며 나에게 다가왔다.
피로 흥건한 내 손목을 잡아 고정한 그는 익숙하게 가죽 수갑을 채웠다.
((놔! 놓으라고!))
"다 부셔도 좋아. 다치거나 병들면 치료해줄게. 네가 미쳐도 널 사랑할 거야. 그러니 내 곁에서 떠나지만 마. 난 널 위해 뭐든지 해줄 수 있는데 넌 내 곁에서 떠나지 말라는 그 부탁 하나가 들어주기 힘든 거야?"
((이런 걸 바란 적 없어. 난 네 것이 아니라 난 나 스스로의 것이야. 날 곁에 가둔다고 해서 온전히 너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왜 모르는 거야? 자유롭고 싶어. 네가 주는 의식주는 달콤할지 몰라도 자유보다 달콤하진 않아.))
"자유는 아름다운 장미 같을지 몰라도 가시를 숨기고 있어서 널 상처줄 거야. 이미 알잖아. 네가 자유를 위해 무엇을 희생했어야 했는지. 수도 없이 져 갔던 네 목숨들 내 곁에서 죽어가던 네가 다음날 웃으며 나에게 인사를 할 때. 나는 이미 네가 만든 우리에 갇혀 갔어. 처음부터 널 만나지 않았다면! 널.... 사랑하지 않았다면. 네가 만든 감옥은 이것보다 더 치밀해서 빠져 나올 수 없었어. 지금도 난 죽어가. 네가 날 죽여가. 넌 여기 갇혀서 죽어간다고 느끼겠지만 난 매 분 매 초 죽어간다고! 사랑해."
그는 순간 말을 멈췄다.
이번엔 그의 거친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매웠다.
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눈이 나를 가까이에서 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.
((나도 널 사랑해... 날 가둬 두고 이런 말을 들어봤자 넌 믿지도 못 하겠지. 내 자유의지로 너의 곁에 있을 때는 이 말이 너에게 닿았었을 텐데. 지금은 마치... 벽을 보고 얘기하는 기분이야. 진심으로 너는 이게 맞다고 생각해? 내 자유를 뺏어가서 마음이 편해졌어? 사랑한다는 말 조차 전해지지 않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 거야?))
"...."
그가 일어서서 방을 가로질렀다.
서랍장을 여는 익숙한 소리와 함께 차가운 바늘이 팔에 닿았다.
"신경쇠약이 나날이 심해지네. 의사를 데려 오도록 할 테니까 오늘은 이걸로 참아."
((내 말 좀 들어! 후루야! 후루...야...))
점점 목에서 부터 힘이 빠져나갔다.
내 반항이 줄어 들 수록 약은 점점 더 내 몸을 지배해갔다.
배 위에서 느껴지는 무거운 무게감이 악몽처럼 나를 짓눌렀다.
후루야는 늘어진 나를 침대에 바로 눕히고 숨이 막힐 만큼 꽉 끌어 안았다.
그의 품에 완전히 포위 된 채로 내 의식이 멀어져 갔다.
"네 말은 전부 다 믿어. 넌 내 유일한 신앙이니까. 네가 아무리 날 사랑한다고 해도 널 사랑하는 내 마음을 가릴 수는 없어. 너 하나만을 숭배하고 내 인생을 바쳐서 사랑한다는 걸 알아줘. 그걸 알고도 내게 이런다면.... 넌 잔인한 사람인 거야..."
그의 원망이 일렁이는 촛불처럼 흔들 거리다가 바람에 꺼지듯 한 순간에 잦아들었다.